얼마 전 계약 건들을 정리하다가 한번 세어봤습니다. 10년 넘게 함께하고 있는 병원이 열 곳 정도 됩니다.
숫자를 자랑하려는 건 아닙니다. 세어보고 나서 든 생각이 따로 있었습니다. 이 병원들은 왜 남았을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는 소개로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장님이 다른 원장님께 저희를 소개해 주시는 식이죠. 이렇게 오신 분들은 시작점이 다릅니다. 이미 누군가가 저희를 대신 검증해 준 셈이니까요. 첫 미팅부터 어느 정도 신뢰가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개 없이 오셨던 원장님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처음 보는 회사에 매달 비용을 내는 겁니다.
말씀은 안 하셔도 얼굴에 쓰여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 돈만 받고 일은 안 하는 거 아닌가.'
저는 그 표정을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료는 그날 결과가 나옵니다. 신경치료를 하면 통증이 잡히고, 보철을 씌우면 씹힙니다. 원장님이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마케팅은 다릅니다. 효과는 몇 달 뒤에 나오는데 비용은 매달 나갑니다. 그사이에 저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은 병원 노출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어떤 메시지를 어느 매체에 실을지 기획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린들 원장님이 선뜻 동의하시기 어렵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인데, 원장님 입장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평가할 수 없는 일을 열심히 했다고 말하면 설명이 아니라 변명으로 들립니다.
그러다 보니 원장님이 세실 수 있는 게 하나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번 달에 글이 몇 개 올라갔나. 사실 개수는 성과와 큰 관계가 없습니다. 요즘처럼 AI로 글을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개수를 세시는 건 원장님 탓이 아닙니다. 보이는 게 그것뿐이라 그런 겁니다.
보이지 않는 과정을 설명해서 신뢰를 얻으려는 건 순서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원장님이 직접 확인하실 수 있는 건 하나뿐입니다. 신환이 느는가.
저는 피터스의 방법과 과정이 옳다고 확신합니다. 15년 넘게 치과 마케팅만 하면서 다듬어 온 것이니까요. 확신이 있으니 기간을 길게 잡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이겁니다.
"원장님, 이왕 맡기셨으니 1~2달만 저를 믿으세요. 환자가 늘 겁니다."
저희는 계약기간이 없습니다. 1~2달 지켜보시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셔도 됩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병원이 마케팅 업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은 대부분 방법이 맞지 않을 때입니다. 그런데 계약기간이 남아 있으면 바꾸지를 못합니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몇 달을 더 끌고 갑니다.
그 몇 달이 병원에는 가장 중요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개원 초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업체를 붙잡아 두려고 만든 조항이 정작 병원의 시간을 태우는 겁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두 달이 지나 신환 숫자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원장님의 태도가 바뀝니다.
가장 알아보기 쉬운 신호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부터 저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다른 곳에서 이런 게 좋다는 의견이 들어와서요.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병원에는 마케팅 제안이 끊임없이 들어옵니다. 그걸 저에게 먼저 물어보신다는 건 의미가 큽니다. 검사하시던 분이 물어보시는 분으로 바뀐 겁니다. 치과 마케팅에 관해서는 제 전문성을 믿어 주신다는 뜻이니까요.
의심이 걷히는 순간은 대체로 이렇게 조용합니다.
신뢰가 생기고 나면 그때는 과정을 말씀드려도 변명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저희 업무 시간의 대부분은 글을 쓰는 데 쓰지 않습니다. 병원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살피고, 어떤 메시지를 어느 매체에 어떻게 실을지 정하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씁니다.
글은 그 판단의 결과물입니다. 하나를 쓰더라도 무엇을 쓸 것인가, 얼마나 제대로 쓸 것인가가 개수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신뢰가 생기면 다음 단계는 편안함입니다.
저희는 병원마다 단체 대화방을 두고 있습니다. 원장님이 요청이나 피드백을 주시면 빠르게 회신하고 바로 작업에 들어갑니다.
원장님은 바쁘십니다. 진료 사이사이에 마케팅까지 챙기셔야 합니다. 그 시간을 덜어 드리는 게 저희 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오래 쌓인 노하우가 붙으면 한 단계가 더 생깁니다.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처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의도를 읽어 더 나은 방향을 제안드릴 수 있게 됩니다.
오래 함께할수록 저희 시스템에는 그 병원의 히스토리가 쌓입니다.
어느 시기에 무엇을 했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어떤 메시지가 그 병원 환자분들께 통했고 어떤 것이 반응이 없었는지. 저는 피터스를 만들 때부터 이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모든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두고 있습니다.
이게 요즘 더 크게 쓰이고 있습니다. AI가 병원의 정보를 읽어 가는 시대가 되면서, 그동안 쌓아 둔 데이터가 그대로 자산이 됐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곳에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치과 마케팅을 시작한 지 15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지금의 규모와 프로세스를 갖추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답은 특별한 데 있지 않았습니다. 원칙을 꾸준히 지키면서, 트렌드에 휩쓸리지는 않되 필요한 만큼은 적응해 가는 것. 그게 정답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돈이나 수익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는 것.
10년을 함께한 열 곳의 병원은 우연히 생기지 않았습니다. 1~2달의 결과로 시작해서, 빠른 소통으로 편해지고, 쌓인 데이터로 깊어지고, 결국은 관심으로 남았습니다.
지금 3개월 차인 원장님과도 저는 같은 과정을 지나고 있습니다.
